[중앙 시조 백일장] 4월 수상작
-황혜리
맨 처음 나의 방은 둥그런 물속이었지
따스한 선과 선이 날라주는 영양분을
날마다 받아먹느라 단호하게 웅크렸지
아주 가끔씩은 팔다리를 뻗었는데
꼭 감은 눈 속으로 잠이 오듯 별이 뜨자
열 달도 안전할 수 없다? 그럼 나는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런 우려 말끔히 걷으라고
온밤 내 출렁이며 받아놓은 빛의 씨앗
우렁찬 울음만 같은 불빛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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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리
황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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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
-이종현
앞을 보고 걷다가 가끔 뒤를 바라볼 뿐
함께 걷고 있는 등, 읽은 적 없었다
햇살은 가슴 몫으로 앞서 걷지 않는 그
고단한 흔적들 방바닥에 부려놓고
뒤척이는 밤을 다독이지 못했다
일어나 기대앉은 상처 눈치 채지 못했다
업어준 기억들을 손에 움켜쥐고
쓰러진 벽 아래 아버지가 있었다
내밀지 못한 그리움 쿨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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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하>
-박혜순
또다시 절벽이다 멀미나는 허공에서
발 딛고 머물 자리 찾지 못해 맴도는 생
싹 싹 싹 빌며 쫓기는 똑같은 일상이다
그 선은 넘지 마라 침묵의 경고처럼
경쟁의 자리다툼 손톱을 잘라낸다
을의 선,
딱 거기까지! 잊지 마라 경계를
겨우내 움츠렸다 비상하는 산꼭대기
밥그릇 기웃대는 생 위에 막다른 곳
바람 휙, 등 뒤를 훑고 꽃잎이 길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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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심사평>
심사위원: 박권숙·염창권 (대표집필 박권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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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조>
-임채성
미치게 보고 싶소, 뼛속 시린 새벽이면
풍차거인 마주하던 대관령 등마루에서
하나 된 우리의 입술, 그 밤 잊지 못하오
풋잠 깬 공주 눈엔 태백성이 반짝였소
서로의 몸 비비는 양 떼들 울음 뒤로
하늘도 산을 안은 듯 대기가 뜨거웠소
한데 이젠 겨울이오, 인적 끊긴 산정에는
로시난테 갈기 같은 마른 풀만 듬성하오
나는 또 그 말에 올라 북녘으로 길을 잡소
백두대간 어디쯤에 그대 앉아 계실까
폭설이 지운 국도 철조망이 막아서도
숫눈길 달려가겠소, 한라에서 백두까지
■
◆임채성
임채성
남남북녀(南男北女)! 한반도의 남쪽에 있는 돈키호테가 북쪽의 애인 둘시네아 공주와의 극적 만남을 꿈꾸는 시다. 바로 그 꿈속에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염원이 담겨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부제(副題)에서 이미 드러나 있듯이, 이 작품은 시종일관 돈키호테가 둘시네아 공주에게 전하는 비장한 입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언젠가 풍차와 한판 맞장을 뜨던 대관령 등마루에서 그녀와 입술을 맞추었다. 우주 전체가 통째로 합일된 것 같았던 그날 밤의 그 벅찬 감회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작품 첫머리의 “미치게 보고 싶소”라는 격한 어조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그토록 미치게 보고 싶은데도 돈키호테는 지금 둘시네아 공주를 볼 수가 없다. 겨울과 폭설, 철조망 등이 상징하는 험난한 난관들이 이중삼중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데다, 공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애마 로시난테의 등에 올라타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막무가내로 길을 잡는다. 애마의 말발굽 소리만큼이나 작품 전체가 역동적인 호흡과 리듬으로 펄펄 살아 뛴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뜨겁다는 뜻이 되겠다.
환한 봄날에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정상회담들이 연달아 열릴 전망이다. 정상들 가운데는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는 돈키호테들이 많아서 걱정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고민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햄릿보다는 목표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나가는돈키호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부디 돈키호테와 둘시네아 공주가 격하게 포옹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이종문(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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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지식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04513) 또는 e메일(choi.sohyeo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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