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청풍명월 전국시조백일장’ 개최요강

 

결백하고 온건한 한국인의 기상을 품고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사를 논하는 시조는 우리 민족문화의 대표적인 자존심입니다

우리 고유의 민족문학인 시조의 보급과 저변확산을 위하여 개최하는 12회 청풍명월 전국시조백일장 뜻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1. 일 시 : 2019년 5월 18오전 10

2. 장 소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 청주고인쇄박물관 경내

3. 시상내역(인원 및 1인당 시상금단위 만원)

   - 대학일반부 장원(1) 200, 차상(1) 100, 차하(2) 50, 참방(6) 20

   - 고 등 부 장원(1) 30, 차상(1) 20, 차하(2) 10, 참방(10) 5

   - 중 등 부 장원(1) 30, 차상(1) 20, 차하(2) 10, 참방(10) 5

   - 초 등 부 장원(1) 20, 차상(1) 10, 차하(2) 5, 참방(10) 3

     ․단 시상 인원 및 상금은 예산확보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

    ※초등부,중등부,고등부,대학일반부 장원 입상자 충청북도지사 상장

    ※초등부,중등부,고등부 우수 지도교사 충청북도교육감 상장

4. 참가비는 없으며기 등단한 시조시인은 참여할 수 없고제한된 구역에서 제한시간 내에  지정된  글제로  

            제출하여야 하며,휴대폰을 지참할   수   없습니다대학일반부는 신분증을 지참해야 합니다.

5. 심사는 국내 중견문인께   의뢰하고입상작  중   추후에 기성문인 또는   모방작으로   판명되면   상금을   회수하고   이를

           공개합니다.

6. 일반부 장원 입상자는 충북시조문학회 회원의 자격이 주어지며본 백일장 차상 이상 입상자는 더 많은 신인

           발굴을 위해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7. 참가신청서는 2019. 5. 15까지 다음 주소로 제출하여야 하며소수 개인에 한하여 당일 신청서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beautypoet

   - 전자메일 : sujungyo1965@korea.kr(서정교 : 010-5492-5641)

                                                                                           

                                                                                            2019년 1월 10

                                                                                                                                           충북시조문학회장

 

2019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농민신문

 

고드름

 

고성만

 

창살의 봉인에서 해제된 집이 있다

유성우 지던 하늘 내 손에 쥐어진 별

여우가 삼켰다 뺐다 유혹하던 유리구슬

 

원추형 거꾸로 선 꿈에 맺힌 물방울

미세한 금, 새떼가 저 멀리 흩어진다

바람이 칼질한 공중 벌겋게 부푼 노을

 

지붕을 걸으며 조심조심 내려온다

내연의 열기로 밥을 짓는 처마 끝

또 하루 저물어간다 창살 다시 꽂힌다

 

[당선 소감] “일상에 지친 독자 달래는 작품 쓰고파

우물물 맛보러 가는 길 안내하듯 옹골찬 서사 담아내고 싶어

 

내 그리움의 영토엔 자주 눈이 내린다.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마당이 있고, 고드름 주렁주렁 매달린 낡은 집 뒤 우물이 있었으며 우물 속엔 하늘과 바람과 별이 흘러갔다.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꿈을 꾸었다. 시인 되는 꿈을.

칠백살 먹어도 건재한 생명체. 어떤 말을 담아도 찰랑찰랑 엎질러지지 않는 그릇.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고유한 정형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우리는 왜 시조를 말하는가?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을 가장 짧은 시형으로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것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촌철살인!

시조의 멋을 사랑한다. 맺고 풀리며 휘어져 넘고 넝쿨지는 가락을 사랑하고 조운·정완영 이런 분들의 시조를 사랑하고, 대한민국 훌륭한 시인들의 시조를 사랑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우물물 맛보러 가는 길을 안내하듯 산뜻한 이미지와 옹골찬 서사를 담아내고 싶다.

시조를 삼십여년 귀동냥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이제 삼년여, 이 나이에 신춘문예라니 아, 나도 참! 삭풍의 시절에도 올곧게 시조의 자리를 지켜준 <농민신문>, 염창권 시인을 비롯한 시조로 함께 놀아준 광주문학아카데미 시인들께, 밝은 눈으로 어두운 시 뽑아준 이정환·이달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린다.

고성만 1963년 전북 부안 출생 1998<동서문학> 신인상 시 당선 광주광역시 국제고등학교 교사 명예퇴직 문예지도사로 활동 중

[심사평}

신선한 시어 차용, 맺고 푸는 음보의 능수능란함 좋아 첫수 초장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독자 마음 끌어들여

기해년 첫새벽, 시조시단의 종을 울릴 전령사는 누구일까. 한해 동안 벼리고 벼린 칼날의 예리함과 다독이고 다독인 내면 서정을 동시에 갖춘 신예를 기다리는 마음은 설렌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손끝에 전해지는 짜릿함을 즐기면서 응모작들을 읽어나갔다. 퍽 고무적인 사실은 정제되지 않은 생경한 목소리, 혹은 시조형식에 갇힌 생각보다는 응축·운율이 동시에 살아 있는 작품들이 다수 있어 시조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선자의 눈길을 끈 작품은 강물 강론’ ‘은유의 아침’ ‘고드름등 세 편이었다. ‘강물 강론은 강의실 모습을 시조로 옮겨온 발상의 참신함과 유려한 문체가 돋보였다. 그러나 둘째수 종장 나루터 낡은 배 한척이란 낡은 비유는 긴장감을 잃게 한 아쉬움이 있다. ‘은유의 아침은 폭설의 시간을 점묘의 기법처럼 완성해가는 노력이 돋보였지만 풍경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내면의 깊이가 결여된 것이 흠결로 지적됐다.

이들 두 작품에 비해 고드름은 신선한 시어 차용, 빈틈없는 구성력, 맺고 푸는 음보의 능수능란함이 좋다. 첫수 초장에서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우리는 시적 완성도면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인 고드름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함께 보내온 작품 섬진초등학교에서는 동시조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역량도 엿볼 수 있어 흐뭇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시조의 이랑을 개척한다면 주목받는 시조시인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밖에도 트럭에 팔려가는 돼지를 시산제에서 다시 만난 운명을 익살과 해학으로 풀어낸 어떤 소풍’, 단수정형에 천착한 엄마 생각등도 내일을 기약해볼 수 있는 신인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나머지 분들에게는 부단한 정진을 빈다. <이정환 시조시인, 이달균 시조시인>

 

 

매일신문

 

 

세신사

 

이현정

조각가가 꿈이었던 팔목 굵은 사내는

대리석 목욕대 위 모델을 흘깃 보고

한 됫박 첫물 뿌리며 데생을 시작한다

 

한때는 눈부셨던 세차장 사장도

지금도 눈부신 성형외과 의사도

실상은 꼼짝 못하고 몸을 맡긴 피사체

 

깔깔한 때수건 조각도처럼 밀착시켜

핏줄까지 힘주어 묵은 외피 벗겨내면

곧이어 환해진 토르소, 두 어깨 그득하다

 

수증기 송송 맺힌 목욕탕 한 편에서

날마다 극사실주의 석고 깎는 조각가

두 손은 북두갈고리 거친 숨을 뱉는다

 

[당선소감]

20대 중반 쯤엔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 적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 언젠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드림리스트'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내가 창작한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꿈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여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던가요. 동사이다 못해 한 문장에 가까운 이 꿈은 오래도록 저의 드림리스트에서 사라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았습니다. 갈망했지만 방법을 몰랐고 어둠 속에 혼자 벽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 전, 대학교 때 처음 제대로 접했던 시조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일상에 부대끼고 시간에 마모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글밥을 놓지 않으려 애써 온 시간이 지났습니다.

'세신사'는 철저히 픽션이지만, 내 글 아닌 다른 글밥을 더 많이 보고 쓰고 다듬으며 이것이 내 업인지 꿈인지 모를 혼몽의 일상을 살아가는 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치열하게 받아내고 있는 이 일상이,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결국 꿈의 형태를 좇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매일 거친 숨을 뱉고 있을 무렵, 당선 소식이 들렸습니다. 드림리스트에만 머물러 있던 활자가 입체로 살아 꿈틀대는 느낌이었습니다. 며칠 간 깨면 현실이 아닐까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드림리스트를 작성하고, 더 큰 꿈을 그리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본인의 작품이 시인을 꿈꾸는 한낱 미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짐작도 못하실, 기라성 같은 선배 시조 시인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당신들의 작품을 등불삼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도반이자 스승이 되어 주시는 두 분과 사랑하는 가족, 응원해준 친구들, 동료들께도 감사합니다.

제 시의 수많은 모티프가 되어주시고 근 20년간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 홍복수 씨를 마지막 감사의 이름으로 올립니다. 당선 소감에 할머니 성함을 올리고 나서 직접 소식을 전해 드리지도 못했는데, 그 사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곳에 마지막으로 꼭 불러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처럼 업이 꿈인지, 꿈이 업인지 모르게 매일을 맹렬히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북두갈고리' 손들과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지치고 거친 손을 역시나 지친 제 작은 손으로, 재주로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운김을 내어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글로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뜁니다.

 

약력/ 이현정

1983년 안동 출생. 대구교육대 국어교육심화과정 졸업. 중앙 시조백일장 장원(2017), 차상(2018). 대구시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재직

[심사평]

여러 문학 갈래 중에 시조를 선택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왜 하필이면 시조인가? 생뚱한 이야기일는지는 모르지만 시조를 쓰고자 하는 이에게는 남다른 소명의식이 요청된다. 또한 시조를 쓰겠다면 무엇보다 시조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 형식이 자신의 체질에 잘 맞는지 면밀히 자체 검증해 보아야 한다.

진정 영혼의 자유로움을 갈구한다면 3612음보라는 정형의 틀을 가진 시조는 높은 장벽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천명할 수 있는 것은 틀이 마냥 정신을 억압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조 형식을 잘 숙지하게 되면 틀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때 틀은 틀이 아니라 개성적인 기율로서 생명력을 확대·재생산하는 창의적 의미공간이다.

4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읽으면서 시종 마음이 들렜다. 독해의 즐거움이 컸고 무엇보다'또 다른 목소리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도 한몫했기 때문이었다. 열독 끝에 마지막까지 눈앞에 남은 이는 이현정, 김나비, 황혜리, 김향미였다. 이들은 일정 수준을 보여줬고, 나름대로 치열한 예술적 쟁투의 흔적이 작품 곳곳에 역력했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현정의 '세신사'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세신사'는 공중목욕탕에서 몸의 때를 미는 일을 하는 사람을 등장시켜서 '인간의 길'을 탐구한 점이 이채로웠다.

당선작은 신인으로서 만만찮은 패기와 저력이 뒷받침된 역작이다. 진정한 삶의 길이 어떠해야하는 지에 대해 치열하게 궁구하면서 시종 한 호흡으로 밀고 간, 네 수로 직조된 인생보고서이기도 하다. 당선이 문학적 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제 겨우 구름판 하나 장만한 것일 뿐이다. 모름지기 앞으로 이 영예에 값하는 부단한 정진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시조는 세계와 삶에 대한 대응방식으로서 여전히 유용하다. 응모자 모두 마음을 다잡으며, 시조 쓰기를 향한 열정의 불길을 꺼뜨리지 말기를 당부한다. <심사위원 이정환시인>

 

 

한라일보

 

 

나이테를 읽다

 

최정희

 

생은 온통 흔들림의 기억으로 남는가

나무의 가슴은 소용돌이로 어지럽다

상처를 보듬어 안은 강물의 파문처럼

 

안으로 삭혀 삼킨 울음의 무늬인지

밖으로 밀어냈던 몸부림의 흔적인지

손금의 운명선같이 가지들은 뻗어나가고

 

빛과 어둠 현실과 이상, 그 삶의 온도차

바람은 언제나 제 안에서 일었다

우듬지 경계를 넘어 푸른 길을 찾는데

 

현기증으로 사는 일에 멀미가 나는 날엔

발밑의 뿌리들은 따뜻한 흙 움켜잡는다

연둣빛 어린 연어 떼 돌아오는 가지 끝

 

 

[당선소감]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오래 글 쓸 것

먼저 당선의 영예를 안겨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에 대한 내적 갈등으로 4~5년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학원 일이 바빴다는 핑계를 대 보지만 사실, 글에 대한 방향을 잃고 헤맸던 것이 주원인이었습니다.

올해 막내딸이 대학에 입학하고 무엇을 하며 늙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글을 써야 겠다.' 그러나 무뎌진 감성은 쉽게 깨어나지 않았고, 오래 묵혀두었던 시들을 매만지며 감각을 되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다시 쓸 수 있을까.' 내 안에 이는 끝없는 의문부호를 당선이라는 영예로 용기를 불어 넣어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어린 날 삶에도 수학처럼 정답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정답을 찾아 수없이 많은 날들을 헤매였고, 정답을 찾지 못해 쓰러져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깨달은 건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 정답이 없어 삶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이었습니다.

삶의 각진 모퉁이를 돌아가면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삶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고, 이제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제 모습이 기대가 됩니다.

지천명, 나는 아직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불혹을 지나왔음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지만 흔들림이 고통이 아닌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저를 위무합니다.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오래 글을 쓰겠습니다. 남편과 아들 지산, 딸 지인과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1967년생 2013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5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경기도 이천시 거주, 수학학원 강사

 

[심사평] 서정적 진정성과 신인다운 패기 돋보여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은 올해로 네 번째라는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패기 있고 탄탄한 신인들을 배출해왔다.

응모작의 양과 질도 여느 신춘문예에 뒤지지 않는다. 예심을 통해 본심에 올라온 열두 분의 작품 가운데 조우리의 '각설탕', 조담우의 '설거지 1', 정인숙의 '장 담그기 하는 불혹', 최정희의 '나이테를 읽다' 등 네 편을 두고 논의를 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특징은 일상 체험에 뿌리를 두고 시적 인식과 상상력의 초월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언어의 징검다리로서 현대시조의 흐름을 타고 있다.

이 중에 '각설탕'은 시상이 신선하고 실험적인 면이 돋보이는 반면 하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부족했다. '설거지 1'은 일상에서 포착된 사물을 미학적 관조를 통해 읽어내는 저력이 있지만, 개성적인 자신만의 목소리가 아쉬웠다.

결국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장 담그기 하는 불혹''나이테를 읽다'를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장 담그기 하는 불혹'은 유려한 시적 운율과 이미지로 현대성과 독창성을 갖고 있지만, 설명적인 제목과, 시적 형상화가 덜 된 단어들이 더러 눈에 거슬렸다.

결국 서정적 진정성과 더불어 신인다운 패기가 돋보이는 '나이테를 읽다'를 당선작으로 본심위원들이 기쁘게 합의했다. 특히 넷째 수는 시 전편에 탄탄한 긴장과 탄력을 안겨주면서, 제목의 평이함이나 다소 산만한 시상의 전개를 아우르는 힘이 있는 보기드믄 절창이다. '연둣빛 어린 연어 떼'가 허공의 물살을 가르며 '돌아가는 가지 끝'의 싱싱한 가능성을 믿기로 한다. 당선자의 다른 작품 여러 편도 오래 눈길을 머물게 할 만큼 빼어났음을 밝힌다. 그의 앞날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시조시인 오승철, 시조시인 오영호>

 

 

동아일보

 

마당 깊은 집

 

강대선

 

바랭이 강아지풀 숨죽이는 저물녘에

장독대 틈 사이로 구렁이 지나간다

고요는 툇마루에서 먼지로 층을 쌓는다

우체통은 주인 없는 고지서를 받아놓고

별들은 감나무 가지에 오종종 앉아 있다

치마는 구부러지고 기와 물결 끊어진다

바람이 들락거리는 양주댁 방안으로

손주들 웃는 모습 흙벽에 즐비한데

흩어진 근황을 묻는 달빛만 수심 깊다

 

 

[당선소감]

 

당선이란 물에 떴으니 항해를 시작해야

시조의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 갈 것

 

당선 소식을 받고 어린 시절 나주에서 바라본 노을을 떠올렸습니다. 저에게 시조는 노을처럼 붉기도 하고 그런데 붉음만은 아니어서 어두운 낯빛을 띠기도 하고, 때론 서운케 돌아눕기도 했으나 언제나 제 곁에 머물고 있는 고향이었습니다. 먼저 연로하신 부모님께 당선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정말 운명처럼 시조가 저를 부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지난 동아일보 신춘문예 기사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2014년 당선자들이 물에 떴으니 문학의 바다로 나아가야죠라는 문구 앞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문득 나 또한 이제 물에 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방향키를 잡아야 할지는 이제 순전히 당선자들의 몫일 것입니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배를 타고 함께 가는 이들이 있으니 그 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저 또한 항해를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동아일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용기를 북돋아주신 허형만 은사님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신 정윤천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와 함께 한 지송시회, 시빚기반, 죽란시사회, 손오작가회, 국제PEN광주 회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유은학원 제자들과 경진, 준원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물이 끓기 위해서는 99도가 아니라 100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마음에 품고 글을 썼습니다. 1도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한 발을 더 내디뎠을 때 정상이 보이고 한 번 더 바라보았을 때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끓어오르는 1도의 열정을 품고 시조의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 가겠습니다.

1971년 전남 나주 출생 전남대 불어불문학과·조선대 국어교육과 졸업 광주여상고 교사

 

[심사평]

 

기성 시인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신선

풍요로운 서정성 표현시대정신도 담겨

 

현대시조의 두 가지 요소는 서정성과 시대성이다. 음보율이나 시적 의장 등의 여러 기술은 서정성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고 현실성이나 현장성은 시대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신춘문예는 여기에 특히 참신성을 하나 더할 필요가 있다.

이런 항목들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마음에 두고 작품을 읽어 나갔다. ‘시나브로 꽃잎 날다’ ‘가을, 추사체로 읽다’ ‘시나브로 압구정을 배회하다’ ‘종로해넘이 시간’ ‘동지팥죽’ ‘마당 깊은 집등을 먼저 가려놓고 반복해서 읽었다. 투고자들의 작품 성향과 장단점을 발견한 뒤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어떤 기성 시인들의 기법이나 시어가 집중돼 있거나, 소재와 시각에 개성이 부족하거나, 음보율이 부드럽게 흐르지 못하거나, 서정성이 지나치게 빈약한 작품을 제외하니 맨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동지팥죽마당 깊은 집이었다. ‘동지팥죽은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그 수련의 결실이 역력히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시대의식의 울림이 지나치게 부족하다고 보았다. 물론 이 지적은 그의 응모작 전편에서 느낀 소감이다.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국 우리 두 심사위원은 마당 깊은 집을 선택했다. 이 시인의 응모작 전편에서 우리가 특징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다소 연소한 듯하면서도 기성 시인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 점과 묘사 능력의 우수함, 그리고 시대의식이 작품 배면에 깔려 있다는 점이었다. 풍요로운 서정성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선의 영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안목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서 마침내 우리 시조시단의 돌올한 개성이 될 때까지 어떤 신고도 이겨낼 수 있는 열정과 분발을 당부하며 기꺼이 축하드린다. <이우걸·이근배 시조시인>

 

 

국제신문

 

 

페디큐어

 

박진형

조그만 발톱에서 새로운 꽃 돋아나

꽃밭이 마법으로 풍성해질 때까지

발걸음 사그라지는 발끝을 생각한다

 

어머니 흔들리는 건 그늘을 입기 때문

씨방 속 남은 열기로 닳은 당신 세워보면

점묘된 눈물자국은 혼잣말을 삼킨다

 

돌아본 발자국 소리 얼굴을 내밀 때

그믐달 위로 하나 둘 피어난 바닥꽃

꽃잎은 울지 않기 위해 발끝부터 타오른다

 

 

[당선소감] 시를 생의 목표로 두고 좋은 시인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늘 왜 시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행여 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 문학적 허영심 때문은 아닐까 돌이켜 봅니다.

낮은 자세로 시의 몸을 갖고 삶이 시가 되는 황홀경을 맛보는 생의 도약을 꿈꿉니다.

용인에 살면서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의 유적지와 묘소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국민 시조인 동창이 밝았느냐를 비롯하여 많은 시가를 지은 약천은 벼슬을 그만둔 뒤 여생을 용인에서 보내며 문집인 약천집을 남겼습니다. 시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상당 부분 그분 덕입니다.

불어를 전공하여 대학 시절 프랑스 고전 시를 읽으면서 정형시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음절 수와 각운을 맞추면서 전개되는 정형시가 주는 묘미를 기억합니다.

시조를 쓰면서 정형의 틀에 갇히지 않고 울림이 있는 시적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시조의 율격을 지켜가되 새로운 이미지를 불러와서 은유가 풍성한 비밀의 정원을 가꾸어 가겠습니다.

시조에 첫발을 내딛도록 기회를 주신 이승은 박권숙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국제신문 관계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시조를 통해 우리말의 결을 살려 노래하겠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시조를 가르쳐 주신 조경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시란 동인, Volume 동인, 용인문학회, 시에문학회 문우들, 사랑하는 가족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약력=1968년 전남 구례 출생.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졸업.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교사. 시란 동인, Volume 동인, 용인문학회 회원, 시에문학회 회원.

 

[심사평]

이번 국제신문의 시조 응모작은 칠백오십여 편, 상위 10%의 작품은 수준급이었다. 그중에는 타 장르 신춘문예 출신이 대거 포함되었다는 말씀도 덧붙인다.

그래서? 어쩌라고?’ 시를 읽은 뒤에 혀에 이런 말이 감기면 그 작품은 덜된 시다. 시조 또한 독자를 겨냥하는 한 이런 단언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인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습작기의 문청에겐 일단 넘어야 할 높은 산이다. 노련함과 낯익음은 시의 동력을 떨어뜨리며 신춘이라는 시적 모험의 걸림돌이기에 최종 10편에서 다시 4편으로 축약하기까지 선자들의 고심이 컸음도 밝힌다.

오서윤의 가방은 해석의 고민 없이도 감각적으로 읽히는 속도감은 경쾌했으나 이미지의 생경함이 아쉬웠다. 여자의 일생을 손에 비유한 김수원의 손의 배후는 깊은 성찰로 끌어낸 구와 구 사이의 긴장감은 좋았으나, 상투적 서술로 적절한 시적 효과를 놓쳤다. 김나비의 모노드라마는 활달한 상상력과 감각적 표현에 비해 묘사에 치중하느라 주제를 겨냥한 구심력을 잃는 아쉬움이 있었다. 박진형의 페디큐어는 슬픔과 상처에 닿아있지만 감상의 뿌리를 거느리지 않는 생생한 발화가 강점이다. 체험의 구체성을 받쳐주는 사유의 도약과 이미지를 조형해내는 솜씨가 자연스러웠다. 둘째 수에 의외의 시상 전개에도 불구하고, 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가공된 정서가 아니라 진정성임을 함께 보내온 희망 트럭’ ‘에서도 잘 드러냈기에 당선작으로 올린다.

좋은 시란 울림이 큰 시일 것이다. 침묵으로 여백을 이끌어내는 시를 쓰기가 어디 쉬운가. 그런 의미에서 시는 장전하지 않은 총이요, 산문은 장전한 총이라는 어떤 이의 은유가 떠오른다.

울지 않기 위해 발끝부터 타오르는 바닥꽃으로 새날을 환히 피우시길 바라며 아쉽게 내려놓은 세 분의 작품에도 못다 한 마음을 전한다. <이승은·박권숙 시조시인>

 

 

경상일보

 

 

스크랩

 

이희정

 

건장한 헤드라인에 낱낱이 포위되어

포지션 따라 줄 맞춘 활자들 그 사이

예각의 커터 칼날이 가로지른 행간들

 

이슈가 이슈를 실시간으로 덧칠한

지면마다 시시비비 들끓는 파열음에

팩트는 구겨진 채로 무혈의 접전이다

 

전모가 드러난 가십은 접어두고

목적지에 소환될 진술은 따라간다

치명적 오독이 없는 재활의 분리수거

 

[당선소감] 소함 잊지 않고 담을 수 있는 시인될 것

 

슬픔과 기쁨, 눈물과 웃음이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는 삶. 짙은 아쉬움과 영광이 혼재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습니다.

저마다의 세상에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취하고 버립니다.

중요한 것의 무게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조라는 문학은 참으로 담고 싶은 그릇이고 삶입니다. 형식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새롭고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소중함을 잊지 않고 담을 수 있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더디고 둔한 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이런 순간을 만나게 해주신 시조 창작 동아리 더율의 지도 선생님과 언제나 곁이 되어 주시는 문우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함께 공부하며 함께 성장하자는교학상장(敎學相長)’ 네 글자를 돋을새김해 봅니다. 함께 걷는 모든 시간이 축복입니다.

늘 응원해 주는 가족들과 친구, 이웃님들, 국문과 씨앗동기님들 고맙습니다. 매 순간을 자식들 기도로 사시는 어머니 사랑합니다.

약력 -1972년 출생, 방통대 국문과 졸업, 포항소재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 샘터 20176월호 시조 입선

 

[심사평] 현재 진행형 소재로 주제의식 선명하게 형상화

 

치열한 사회 의식을 갖췄거나 진솔한 삶의 현장을 다뤘거나 이미지가 탁월한 작품을 찾고자했다.

마네킹을 보다는 관계가 없는 듯 보이는 사물들이 서로 갈마드는 삼투현상이 시를 따스하게 스케치해내는 순발력이 뛰어났으나 체화되지 못한 진술이 엿보였다.

옷수선집, 루이는 놓치기 쉬운 주변 광경의 세심한 관찰과 참신하고 감각적인 표현이 압권인 반면, 추상적 언어가 섞여 구체성이 아쉬웠다.

당선작 스크랩은 현재 진행형의 사회적 소재를 포착하여 주제 의식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이 돋보였다. ‘가짜뉴스는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아니라 국정 전반에까지 침투하여 혼란과 불신을 초래하는 국가적 중대사로 부각됐다. ‘건장한 헤드라인’ ‘예각의 커터 칼날등 신문 활자와 편집이 주는 위압감에 눌려 자칫 놓칠 수 있는 진실의 실종 문제를 긴장감 있게 제시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오독의 문제를 경계하면서 진실이 목적지에 소환될때까지 추적하겠다는 분리수거의지를 드러낸 시적 탐험의 목소리가 당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승은 시조시인>

 

 

조선일보

 

돌들은 재의 꿈을

 

최보윤

 

흔들리는 날씨를 점치는 일이었지

들개가 물고 가는 싱거운 돌 하나

생이란 매일 그 예보에

실패하는 법이라네

 

잎사귀 쥐었다 놓은 바람의 손금처럼

달의 무늬 되지 못한 주름진 돌들은

으스름 달 뜬 밤이면

뜬 눈으로 갈라지네

 

천년을 살 것인 양 견적 없이 괴로워도

뜨거운 재의 꿈을 꾸고 있어 저 멀리

한 마리 개가 오는 동안

()한 피를 흘릴 거야

 

 

[당선소감] 저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여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버릴 수도 부끄러워할 수도 없는 저의 출처입니다.

집이 없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어딘가 얹혀사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고 그 어떤 희망도 욕심도 없이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맥락 없이 비틀대며 글을 쓰던 저에게 시조의 정형성은 아름다운 구원입니다. 형체 없이 허물어져 내리던 저의 시들이 이 율격 속에서 온전해지고 안락해졌습니다. 집이 생긴 느낌입니다. 이 새집에서 저는 울 수도 없이 설레고 있습니다. 아직 배울 것도, 들일 것도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부 때부터 '너는 분명 좋은 시인이 될 거다'라며 격려해주신 오정국 교수님, '믿는다'고 말씀해주신 이승하 교수님, 이제야 감사 말씀 올립니다.

스무 살, 떠밀려온 언어를 견적 없이 써내려간 제가 있습니다. 그 정체 모를 언어의 조합을 ''라고 부른다는 것을 배우고 지난 팔 년간 어떤 의식처럼 신춘문예 투고를 해왔습니다. 그 어떤 언어도 들어오지 않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던 해에도 저를 쓰게 한 것은 고통의 견적 없음도 이 삶의 주인 없음도 아닌 한마디. 네 시가 좋아, 당신들의 그 한 마디, 한마디에 빌어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출처를 함께 사랑해 주고 인정해준 나의 당신들. 그리고 어머니 장··. 당신이 제 출처의 출처이시고, 제가 아는 모든 사랑의 기원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저는 저로, 혼자 아닌 혼자로, 이번 생도 계속해 보겠습니다.

 

1991년 인천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학예술콘텐츠학과 석사 졸업

 

[심사평] 오래된 새로움을 찾는다. 오늘의 시로 거듭나야 오래된 정형의 지평을 새롭게 열기 때문이다. 현대시조의 당연한 전제이지만 오늘의 인식과 방향에 무감한 응모가 아직도 꽤 보여 되짚는다. 새로운 목소리를 눈여겨보면 피상성이 걸리고, 안정적 보법을 들여다보면 상투가 드러나 집었다 내려놓는 반복이 길었다.

끝까지 잡고 있던 김수형은 우리 현실 속 문제의식을 구조에 맞춤하게 앉히는 정형 운용이 돋보였다. 말을 덜어내며 압축미를 더하는 형식의 내면화를 보여준 김율관·이하루·황인선, 미국의 응모자 제이슨 리도 시조의 힘을 오붓이 담아내는 편이다. 또 강대선·김향미·정대섭 등도 발상과 감각의 신선한 조화로 눈길을 오래 잡았지만 기성 시인이라 시조에 진력할지 염려가 앞섰다. 결국 매 편 참신한 인식과 개성으로 정형의 구조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는 최보윤을 택했다.

당선작 '돌들은 재의 꿈을'은 전복적 발상과 감각의 쇄신으로 돌올하다. '생이란 매일 그 예보에/ 실패하는 법이라네' 같은 기시감 있는 문장이 새롭게 닿는 것은 '흔들리는 날씨를 점치는' 발상에서 비롯된다. '잎사귀 쥐었 다 놓은 바람의 손금처럼' 무용하나 잎을 키우는 바람과 '뜬 눈으로 갈라지''주름진 돌' 같은 비유도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이면의 곤고한 시간을 담보한다. 돌들이 꾸는 '뜨거운 재의 꿈'이 착한 피를 흘려야만 꿈꾸기가 가능해진 청춘의 환기로 보이는 까닭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의 비상을 바란다. 더 외로워졌을 다른 응모자들의 뜨거운 응전도 기원한다. <정수자시인>

 

중앙일보

 

,,

 

이현정

 

고요했던 순물질

비등점에

닿는 순간

 

최선의 방어이자

최후의 공격으로

 

, ,

들끓어 오르지

맹렬해진

심장의 서슬

 

 

차오르던 역한 기운

포화점을

넘는 찰나

 

한 모금 혼돈주로도

솟구치는 혀의 돌기

 

이맛전

짓이겨져도

치받아버리지

 

 

[당선소감] 어떤 말을 벼려 쓰면 후회가 남지 않고 기억에 남는 소감이 될까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습니다. 고민의 끝을 거듭 짚어 봐도 제한된 지면 안에 진심과 감사를 담는 것 외에는 답이 없기에, 소박하고 담박하게 소감을 전해 봅니다.

감정의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 거친 질감의 시조, 더 무두질해야 할 시조를 꼭두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내가 창작한 작품, 나만의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이제 그 꿈의 길목에 한 걸음을 뗀 기분입니다. 두 발이 가뿐하고 또한 무겁습니다.

어머니처럼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동생과 누구보다 뿌듯해 하실 아버지, 자기 일 마냥 기뻐해준 친척들, 친구들, 동료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당신들이 있기에, 여기에 제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비록 야인이셨지만 시를 참 잘 쓰셨습니다. 시를 쓰고 싶다는 손녀에게 온 마음으로 사랑하며 대상을 바라보라고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말씀에 담긴 마음을 시금석으로 삼겠습니다.

처음 시조에 눈 뜨게 해주시고 불초 제자를 어르고 달래며 정진케하시는, 존경해 마지않는 이정환 선생님께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대학 시절, 좌우명을 써 내라 하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이음말만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음말에 담긴 진정성을 알아보셨던 스승님 덕분에 이 영광의 자리에 제가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쓰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새롭게 바라보며 깊이 천착하여 오래,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1983년 경북 안동 출생. 대구교육대 졸업. 경북대 교육대학원 상담심리전공. 대구광역시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파견 재직 중.

 

[심사평] 새해 벽두에 봄을 맞이할 전령시를 보낸다. 달마다 검증을 거친 응모자들의 정련된 작품들이라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설경미의 이웃집 여자’, 황혜리의 먹이사슬’, 김수현의 유빙’, 윤애리의 쉼표’, 예숲의 파종과 이현정의 , , 이었다. 단단한 말의 결에 삶의 역동성이 넘치는 발화법으로 불안한 관계와의 존재를 성찰하거나 현실의 지난함을 토로하는 시편들과 새로운 시대의 파종을 꿈꾸는 노래들이 다채로웠다. 심사위원들은 한결같이 시가 언어의 심연에 가닿지 못하고 표피적 한계성, 시인의 날카롭고 치열한 시정신과 개성적인 목소리의 부재를 걱정했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이웃집 여자는 오른손을 들면 왼손이 아쉬웠지만 이현정의 , , 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다수의 원숙한 다른 작품에 비해 패기와 진정성, 미래의 가능성을 택한다. 조금은 서툰 보법 속에 주눅 든 현실에 기죽지 않고 한 시대를 난타하며 시적 전략을 곁눈질 않는 그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박권숙, 염창권, 이종문, 최영효(대표집필)>

 

 

부산일보

 

MPD(multiple personality disorder 다중인격장애)

 

김나비

 

포르말린 가득 찬 유리병을 본 적 있니

시간을 베고 누운 병 속의 표본처럼

내 몸속 수많은 사람 보관되어 있지

 

네모난 구멍들이 뚫려있는 몸통에

각진 불이 켜지는 한밤이 찾아오면

사람이 꿈틀거리는 유충처럼 보이지

 

몸속엔 살인범도 그를 쫒는 형사도 살지

술병의 병목 부는 나팔수도 하나 있지

심장엔 물방울 같은 아이들이 뛰어 놀지

 

바람이 어깨 펴고 옆구리를 치고 가면

철커덕 휘청이며 키를 높이 세우지

가슴에 현대아파트 이름표가 반짝이지

 

[당선소감] 오랫동안 꾸던 꿈의 소리 이제야 들어

커튼을 연다.밤을 지새우며 게워낸 글자들이 어둠을 뒤적이고 있다.단단한 어둠의 각질을 뚫고 새로운 세상이 밀려온다.오랫동안 꾸던 꿈의 소리를 이제야 듣는다.내 안에서 다시 꿈틀거리는 문학 씨앗을 하늘에 심는다.셈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덮기도 했다.그때마다 불 꺼진 뒷골목에 쪼그려 앉아, 공벌레처럼 몸을 말고 어깨를 들썩이는 나와 마주쳤다.덧셈의 수치로만 삶을 표시하는 어리석은 일이 다시는 없기를.지금 나를 향해 오고 있는 따듯한 계절을 향해 두려운 걸음을 딛는다.잘 자라 거라 내 글의 씨앗이여!하늘에 누군가 파종한 수많은 별 속에 아직 너의 자리가 남아있을지니.그 자리에 들어 어둠별처럼 고요히 반짝 이거라.그리하여 가장 낮은 곳에 피는 서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윽하게 비추는 알곡이 되거라.정진규 시인님, 임승빈 교수님, 함기석 시인님, 조경선 시인님, 정유지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나의 가족과 심사위원님께도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한다.

 

- 1970년생. 본명 김희숙.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우석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졸업

 

[심사평] 시험관 들여다보고 관찰하듯 현 시대·사람 객관화

34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을 놓고 우선 예심을 보았다.열두 분의 작품을 골라내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미 많이 다루어져 식상한 작품은 비록 율격을 잘 갖추고 있어도 내려놓았다.기성작품을 모방한 듯한 작품도 탈락을 면치 못하였다. 참신한 생각을 바탕으로 한 패기와 열정의 도전정신이 없다면 신춘문예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비슷비슷한 수준의 작품들을 놓고 먼저 결함을 찾아내었다. 회고적, 애상적인 작품은 비록 세련미와 이미지의 선명함이 드러나도 최종선을 넘을 수 없었다. 또한 추상적, 관념적인 작품들도 내려놓았다.'까치집' '길고양이 삽화' '어떤 점검표' '쿠웬 씨의 하루' '고구마 순' 'MPD(다중인격장애)'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그 중 노모의 거칠어진 머리카락과 빛바랜 까치집의 비유가 절묘한 '까치집'과 감칠맛 나는 시어와 긴장미를 일으키는 '길고양이 삽화', 참신한 발상과 현 시대와 사람들의 인격장애를 마치 시험관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듯 객관화한 'MPD' 작품을 두고 고심했다. 세 분 모두 제출한 다른 작품들도 우수했다.그 중에서 'MPD'를 당선작으로 민다. 그의 다른 작품 '기억렌지 사용법' '치매'를 두고 무엇을 당선작으로 할까 고심했다. 물론 작품이 다 좋았다는 뜻도 있지만 정형률에 걸림돌이 보이고, 치매 같은 제목에 망설임이 있었던 탓이다. 앞으로 당선자가 더욱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새로움, 패기, 개성이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을 선정하게 된 것은 큰 기쁨이다. 시조단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키는 한 역할을 할 것으로 믿으며 당선을 축하한다. <전연희 시인>

 

 

서울신문

 

산다화 조리다 남도 삼백리를 졸다

 

김성배

 

입안의 잔칫상 성게알 톡톡톡

터지는 게, 맛있게 터지는 게 고로코롬

깨어진 하루가 홀딱, 파도에 젖었다

터져서 기쁘다니 지지고 졸이고

겁나게 그녀는 가난한 골목길

백내장 앓는 가로등 아래 서로 맛났나

익모초로 단 입술 떠난 그녀 상큼 쓰려,

고사리 고것고것 살리라 하는데

도라지 돌아 돌아서 오라는데 소식 없다

돌아오고 돌아가게 만드는 그녀가

돌아버린다, 저 섬에 돌아갈 땔 아는 건

갯바람 징허게 동백 헤아릴 때이다

 

 

[당선소감] 젊은 글 쓰고픈 쉰 넷, 이 세상 못이 되겠다

함박눈이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짜릿하고 말랑말랑한 전화를 받았다. 버스 안에서 얼음보숭이로 녹아드는 목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심사위원 분들이 모자란 나를 뽑아주신 뜻은 앞으로 못난 빈 구석을 채워가라는 말씀으로 새기겠다.

오래전 글이 밥이 되길 바랐고 그렇게 기웃거렸다. 나를 두고 앞서간 누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들은 기억도 못할 김선향이란 이름으로 시를 쓰던 누나,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행복한 뒤끝은 없었다. 나 역시 어머니의 오랜 병상 생활로 어려워진 집안을 어떻게든 해야 했지만 능력이 닿지 않았다. 솔직히 나의 시는 밥벌이가 될까 시작했지만,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오히려 시라는 양귀비를 맛들이곤 중독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 삶이 어려워서 포기했고 도움이 될까 다시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그렇게 공모전 상도 몇 번 받았다. 오오, 행복한 지옥이여. 제대로 되는 거 없이 이 일 저 일 늑대처럼 순례했다. 글이 내가 잘할 수 있는 하나라 생각했지만 또 다른 좌절의 시작이란 걸 몰랐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글이란 걸. 그때의 나를, 더더욱 지금의 나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부족했는지를. 누나를 보내고 뒤이어 아버지까지 보내고 난 뒤 얼음물에 빨래하던 퉁퉁 부은 내 손에 박힌 동상처럼 나는 혼미했다.

요즘은 글 쓰는 젊은 친구들이 적어진 듯하다. 그만큼 힘든 탓일까. 천연기념물, 멸종위기동물이 되어가는 이 시대 서러운 수컷들의 운명인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살짝 쉰 쉰넷, 시어 꼬부라져도 총각김치는 총각이듯 젊은 글을 쓰고자 한다. 스스로 못났기에 이 세상의 못이 되겠다. 잘 박히겠다.

 

1965년 경북 문경 출생 2000자유문학시 부문 당선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부지부장 등대문학상·해양문학상·거제문학상 수상.

 

[심사평] 아픈 기억, 남도의 맛과 향기로 상상력 극대화

문학은 새로운 감각의 언어와 신선한 양식을 요구한다. 기존의 관습과 제도에 충실한 언어는 다분히 소통의 도구로 떨어지기 쉽다. 삶의 구체성을 담아낸 언어는 관습과 제도, 그 바깥에 존재한다. 시는 습관으로 굳어가는 언어의 형식을 벗어나려고 하는 지점에서 싹을 틔운다.

올해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산다화 조리다 남도 삼백리를 졸다’(김성배), ’술잔의 실루엣이 내걸린 골목’(강대선), ‘새들의 망명정부’(김수형), ‘햇귀 한 줌, 갈피끈 되다’(최평균), ‘천상열차분야지도’(김경태) 등이다. 논의 끝에 김성배의 산다화 조리다 남도 삼백리를 졸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김성배의 산다화 조리다 남도 삼백리를 졸다는 의성어와 의태어, 남도의 방언을 적절히 배합해 살아 있는 말맛과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특히 조리다, 졸다’, ‘터지는 게, 맛있게 터지는 게 고로코롬처럼, 유사발음의 언어를 반복적으로 활용하여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심사위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종장 처리에서 음보가 다소 불안해 보이지만 신인의 패기로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적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음도 주목된다. 여기에 음악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나 가치가 상당했다. 이 작품의 진정한 미학은 화자가 가지고 있는 편 편의 아픈 기억을 남도의 맛과 정서, 산다화의 쓰디쓴 향에 연결 지어 상상력의 폭을 극대화한 데 있다. 한편 이 시조에서 의성어와 의태어의 과도한 남발은 오히려 작품의 진정성을 떨어뜨리고, 말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부디 초심을 견지하여 시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를 당부한다. 또 한 사람의 신인을 맞으며 축하를 보낸다. 낙선자들께도 위로와 정진을 빌며, 시조 창작의 행복한 길에 동행해주시기 바란다. <이근배 · 이송희 시조시인>

 

 

영주일보

 

고무공 성자

 

고윤석

 

어라, 쪼그만 녀석 여간내기 아니었네

엉덩이 뻥 내질러도, 허리를 작신 밟아도

도무지 쓰러지지 않네,

두 손 들 줄 모르네.

 

누르면 꼭 그만큼 이 악물고 튀어 올라

가슴속 숨긴 깃발 하늘 높이 흔들다가

다시금 지상에 내려

낮은 곳을 살피네.

 

마음조차 둥글어서 각진 세상 품은 걸까?

진자리 마른자리 아래로만 길을 찾는

속 텅 빈 고무공 성자,

걸음마저 탱탱하네.

 

 

[당선소감] 덤덤하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가슴 속에 회오리를 일으켰다.

까마득한 산 앞에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멍하니 기다리던 나락 같은 날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투명한 햇살이 눈송이처럼 포근하게 안겨 오는 아침, 어느 산머리에 올라가 돌처럼 뭉친 응어리를 펑펑 쏟아 놓고 싶었다.

무슨 조화였는지 교실 창가에서 말라 죽어 가는 화분 속 꽃들을 보며 학생 때 외운 음보를 떠올려 환경미화란 제목으로 쓴 첫 작품이 중앙일보에 덜컥 실린 이후, 달콤하게 때론 처절하게 숱한 시간을 태웠다. 그렇게 열병을 앓다 , 나는 천재성이 없구나라는 씁쓰름한 자각과 함께 10여 년 외도하다 방황의 발걸음이 이끈 곳이 다시 시조였다. 세상일이 그렇듯 시는 천재성보다 치열한 산고 속에서 태어난다는 깨달음과 함께.

기뻐해 주는 동료 시인들의 축하 전화를 받으며 고독감에 몸부림쳤던 이 여정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이끌어주신 윤금초 선생님과 그리고 늘 내 일처럼 응원해주는 장은수 회장님, 조성문 시인, 박희정 시인, 임채성 시인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동문과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흔들리는 발걸음을 잡아 주고 현대시조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라는 채찍을 가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삶과 사람을 노래하리라. 마지막으로 어머님과 장모님의 건강을 빌며 묵묵히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아내 조인옥과 지수, 지영, 지형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약력

1961년 충남 서산 출생. 한양대 졸업. 동국대 법학박사. 현직 교원. 17, 18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동상 수상. 2017년 중앙시조 백일장 11월 장원 수상

 

[심사평] “평범한 사물의 속성 예리하게 포착, 주제를 단아하게 들어앉혀

등단제도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되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화려한 등단을 꿈꾸는 작가들의 로망은 단연 신춘문예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번 응모작들은 신인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노련하고 탄탄한 수준급의 작품들이 많아 신인 등용문인 신춘문예 심사가 아니고 기성작가의 문학상 심사를 하는 듯 했다.

전국에서 보내온 400여 편의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어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행복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당선작을 고르기 위해 작품을 추려내면서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작품 수가 많기도 했지만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아 심사의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도저히 판가름을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의 이름값에 가까운 신선하고 패기있는 작품이면서 정형시인 시조의 운율과 맛을 잘 살려낸 작품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손에서 내려놓기가 아쉽고 미안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서형국, 조우리, 조경섭, 이형남, 허순옥, 고윤석의 작품만 남겼다.

서형국의 바람 우체부는 감각적인 표현들이 신선했으나 마지막 수까지 끌고 가는 힘이 부족했다. 조우리의 후드티등 작품은 대부분 56수 짜리였는데 끌고나가는 힘은 있었으나 압축과 절제라는 시조의 묘미를 살려내는데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 조경섭의 세한도를 읽다는 무리 없는 편안한 전개는 좋았으나 잡아끄는 매력이 조금 부족했다. 이형남의 정물이 되는 저녁은 이미지가 선명하고 깔끔했는데 당선작으로 선택하기에는 다소 가벼웠다.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한 것은 허순옥과 고윤석의 작품이다. 허순옥의 널문리 아리랑은 시대성이 부각되는 작품으로 시조의 속성을 잘 살려냈지만 뒷받침하는 작품들의 힘이 조금 모자랐다. 고윤석의 작품은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수준이 균일했다. 정형시 전통의 율격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쉽고 편안하게 이끌어나가는 품이 한두 해 닦은 실력이 아니다. 특히 고무공 성자는 평범한 사물의 속성을 예리하게 포착해 작품 안에 주제를 단아하게 들어앉혔다. 시조단의 내일을 이끌어나갈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당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린다.<김영란 시조시인>

 

 

경남신문

 

바다에서 게를 뜯어내고

 

이경선

 

간신히 삼켜버린 한숨이 비려지면

목 안의 근육들이 실눈처럼 벌어지고

묵묵한 바다를 향해

등 구부려 해감한다

 

물 위를 달려가는 주름진 한숨 더미

부표를 끌어안고 바다는 늙어가고

관절의 묵은 소금기

일어서려 넘실댄다

 

성글은 어망 속엔 철 만난 알 품은 게

어망을 부여잡은 게의 집게발과

서로를 놓치지 않는

게와 게의 집게발

 

바다는 게를 따라 포구로 올라왔다

바다를 뜯어내느라 기우는 어부의 등

창백한 휜 낮달 같다

생활이 만곡이다

 

 

[당선소감] 좋은 인연들에게 띄우는 감사 인사

달이 참 예뻤다.

감사 인사만 전하자고 마음먹었다.

김기택 교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만난 첫 선생님이 교수님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인사드리지 못하지만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게으르고 또 게으른 나를 온갖 잔소리와 채찍질로 어떻게든 글을 놓지 않게 만든 안동 사는 이지은 양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지난 몇 년간 당신 덕에 숨을 쉬고, 글을 쓰고, 살아남았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느라 항상 수고가 많습니다. 당신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영광입니다. 옥진 언니, 금란 언니, 현재 언니, 정미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까칠하고 날 선 저를 있는 그대로 무던히 감당해 주셔서 곁에 서 있습니다.

MID 출판사의 최성훈 사장님, 틈틈이 일하게 해주셔서 고비마다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가르침을 주신 노희준 교수님, 해이수 교수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조금씩이라도 좋은 소식을 계속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경주야, 얼굴도 자주 못 보고, 연락도 드물지만 네가 언제나 행복하길 기원해. 평범하게 가족을 지키고 사는 네가 대견해. 미움과 증오에 자신을 내주지 않기를,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사람이니까 그렇지 않은 삶을 계속 살아나가길 바라.

오랜 친구인 래선, 어서 힘을 내고 스스로 일어나길. 래선이 동생 화성, 넌 잘 살 거야. 믿어 의심치 않아. 지현 언니, 정 없는 사람을 정으로 챙겨주는 것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뽑아주신 경남신문과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또 한 번 무너지지 않고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사평] 치밀한 구성·구와 장의 안정감 뛰어나

올해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은 예년에 비해 늘었다. 자칫 힘겨운 일상을 지나다 보면 자아를 돌아볼 겨를이 없게 되는데 민족의 전통시인 시조의 창을 통해 자신과 시대를 바라보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어서 흐뭇하다.

시조는 절제와 응축, 가락의 문학이다. 700년 전통을 이어오면서 민족시가로서의 위상을 지켜온 이유는 가슴에 켜켜이 쌓인 말들을 뱉어내고자 하는 본능의 원심력과 그 방만함을 절제하며 가락으로 다독이려는 구심력이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심사 관점 역시 그런 경계 위에서 얼마나 감동을 수반하고 있는지를 주안점으로 보았다.

선자의 눈길을 끈 작품들은 '하늘 특강', '매생이가 온다', '번트', '바다에서 게를 뜯어내고' 4편이었다. '하늘 특강'은 강의실 풍경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발상은 신선했으나 장이 거듭되면서 묘사보다는 서술에 의존하여 긴장감을 잃어버린 것이 흠결로 지적되었다. '매생이가 온다'는 얘기를 끌어가는 힘과 패기가 좋았다. 그러나 의욕에 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시조 본연의 장점인 절제와 응축의 결여가 아쉬웠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번트', '바다에서 게를 뜯어내고' 두 편이었다. '번트'는 야구경기의 맛을 더해주는 기습번트를 통해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센스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다섯 수로 끌고 가다보니 불필요한 시어들과 정제되지 않은 서정으로 인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흠이 있었다. 이에 비해 '바다에서 게를 뜯어내고'는 위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잘 극복한 사례라고 말하고 싶다. 죽음을 예감하면서 안간힘으로 생명을 부지하려는 게를 통해 어부의 지난한 삶을 대비시킨다. 셋째 수에서 '집게발'의 중복이 문제시 되었으나 넷째 수 종장의 완성도가 이를 상쇄시켜 주었다. 구성력의 치밀함도 기대를 갖게 하고, 구와 장의 안정감이 단단한 습작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뽑는다. 앞으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시조인으로 성장해 가길 바란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아쉽게 낙선한 분들에게는 가열한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장성진·이달균)

 

 

 

 

[중앙 시조 백일장] 8월 수상작

장원

마디를 읽다
-김수형

엑스레이에 찍혀 나온 불 꺼진 시간들
어머니 손가락이 시누대를 닮았다
뭔가를 움켜쥐려던
시간들도 찍혀 나왔다

찬물에 손 담그고 쌀 씻던 아침마다
물속에서 휘어지던 뼈마디를 보았지
울음도 씻어 안치던
어린 날의 어머니

어머니 손마디에 두 손을 내밀면
나이테에 실타래를 감았다 푸는 바람
불 켜진 판독전광판에
먼 전생의 내가 있네


◆김수형
1969년 전남 목포 출생. 전남 도립도서관 상주작가. 현대문학 박사과정. 『현대시조 창작강의』, 신춘문예 당선작, 중앙시조백일장 입상 작품 필사하며 시조 공부.


차상


-황병숙

수북한 폐지더미 방지 턱 넘어간다
시야를 가려버린 위태한 섬 횡단할 때
주춤한 도로의 차들
경적소리 요란하다

어쩌다 이름마저 잃어버린 섬 하나
손수레 돛대삼아 맨몸으로 떠다니는
가풀막 노인의 고도(孤島)로
소낙비 들이친다

지나던 손길들이 밀고 당긴 섬 수레
비 그친 길 위에 곰실곰실 너울대며
또 다시 굴러가는 섬
햇살처럼 환하다


차하

어떤 택배
-정화경

비금도* 바닷물이 한 박스나 배달됐다
사각의 틈새로 행여 신상이 드러날까
테이프 입을 봉하고 모르는 척 앉아있다

밤새 몰래 뭍에 오른 야청빛 창창바다
어느 집 저녁 식탁을 물들이고 싶은 걸까
밀봉한 봉인을 뜯자 왈칵 쏟는 푸른 화두!

서덜밭 엎드려서 온몸으로 써내려 간
어머니 생애처럼 땅 붙안고 앉은 시금치
흙 묻은 잎사귀 하나 시퍼런 눈을 뜬다


이달의 심사평

시조는 천 년 묵은 산삼이다. 사랑을 주성분으로 하는 사람을 위한 명약이다. 사랑의 미학을 진하게 달이기 위해서는 모닥불을 피워 쉬엄쉬엄 오래 기다려야 한다. 많은 응모작 가운데 감수형의 ‘마디를 읽다’를 장원으로 올리는데 이의가 없었다. 시누대의 마디를 보고 어머니의 휘어진 손가락을 떠올리는 비유가 참신하다. 손가락을 통한 오늘의 현상에 나의 존재를 읽어내는 가열한 시편이다. “울음도 씻어 안치던 어린 날의 어머니”와 같은 형상화는 오래 조탁한 내공의 흔적이 역력하다. 탄탄한 세 수의 얼개 속에 원심력과 구심력이 서로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서술적 요소들은 조금 더 오랜 숙성을 필요로 한다.

차상에 오른 황병숙의 ‘섬’은 한 노인의 손수레에 실린 파지더미를 섬에 비유하고 있지만 결코 외로운 섬이 아니다. “잃어버린 섬 하나”는 노인의 전생이지만 “손수레”의 “맨몸”은 현실을 비관하지 않는 건강한 관찰력이 쓸모없는 삶을 쓸모 있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설익은 표현들이 음보에 기대고 있다. 시조 창작의 맹점이다.

정화경의 ‘어떤 택배’를 차하로 택했다. 일관성 있는 구성은 원만했으나 중첩되는 표현법과 “화두”와 같은 사변적 관념어를 걷어냈으면 한다. 내 얘기가 아닌 남의 말을 하는 습관도 흠결 중의 하나다. 사유의 심화를 통한 확장이 정한의 씨를 여물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심마니가 되고 싶다. 꼭 지금이 아니라 오래 된 산삼을 캘 수만 있다면 외롭게 기다릴 수 있다. 조우리·임주동·이기선에게서 다음 기회에 크게 한 번 “심봤다”를 외치고 싶다.

심사위원: 박권숙·최영효(대표집필 최영효)


초대시조

현관
-이광
문 밖엔
늘 헤쳐 온 파도가 넘실댄다

바다도 뭍도 아닌
여기는 작은 선창

그물질
지친 몸 부릴
배를 댄다

집이다


◆이광
1956년 부산 출생.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시장 사람들』 『바람이 사람 같다』. 부산시조작품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


하나의 핵심적인 사물만으로 전체의 의미를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한 개의 이미지가 글을 지배하게 되는데, 그 이미지는 상징으로 작용하면서 전체서사의 개념어, 즉 상징적 이미지가 된다.

시조 ‘현관’에서, 제목은 전체 의미를 통어하는 지배소이자 상징이다. ‘현관’은 집 밖의 거친 풍랑의 현장으로 나서는 “작은 선창”과도 같은 곳이며, 돌아와서는 배를 댈 곳이다. 역으로 “바깥”은 “파도가 넘실”대고, 그물질로 지친 몸이 되어가는 곳으로 극적인 대비가 이루어진다. 현관은 집의 요소 중에서도 도착했을 때의 안온감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현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아직 집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이윽고 “배를 댄다// 집이다”고 했을 때, 이미 심리적으로 집안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집과 바통 터치를 하는 곳이 현관인데, 그 터치의 순간에 바깥이 무화되면서 휴식의 몽상에 잠기게 된다. ‘현관’은 단시조의 절제된 형식 내에서 핵심적 이미지를 통해 삶의 극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시인이 가진 사상과 정서는 직접적으로 전달되기보다는 그 상관물(대상)이 가진 ‘이미지, 사건, 상징’ 등을 통해 구현된다. 이때 시인이 찾아낸 사물의 표정은 상관물로서의 정신적 외피(外皮)라 할 것이니, 시를 읽을 때는 그 표정을 통하여 내부에 깃든 정신과 마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시조 창작에서 하나의 새로운 상징을 발견하거나 표현하려는 노력은 시조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염창권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04513) 또는 e메일(won.minji@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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